고신교회가 잃어버린 것들 (월간고신, 2006년 7월호) 투고

                 고신교회가 잃어버린 것들: 회개와 개혁
                                                유 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 회개와 개혁
        고신교회의 출발과 존재 의의는 한국교회를 위한 회개와 개혁이었다. 우리 선배들은 회개와 개혁운동을 진리운동이라 불렀다. 그들은 이를 위한 방편으로 고려신학교를 세웠고, ‘고려파’라는 고신교회의 별호는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교회를 뜻한다. 고신교회의 역사는 고려신학교의 역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60년 전 7월은 고려신학교 설립의 전주곡인 진해신학강좌(1946,6,23-8,20)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그해 9월에 개교한 고려신학교는 신학사상의 통일과 한국교회의 개혁뿐만 아니라, 국가를 성경 진리에 기초하여 설립되도록 하며, 대학과 학문의 문화운동을 포함하는 정통신학운동을 목표로 삼았다.
        1952년 9월에 어쩔 수 없이 조직된 총노회는 그 발회식 선언문에서, 해방 이래 참된 회개운동과 칼빈이 시작한 개혁주의 운동을 계승하겠다고 천명한다. 1956년 9월 “개혁운동 10주년 기념집회”와 더불어 총노회가 총회로 개편한다. 선배들은 고신교회의 출발과 존재 의의를 회개와 개혁이라고 재확인한다. 만 50년 전의 일이다.
        선배들은 겸손하면서도 당당하였다.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였으나 개혁파 전통에 대한 넓은 안목과 확신을 가지고서 갖가지 비난과 코웃음(鼻笑)도 개의치 않았다. 자기들을 비웃은 한국교회의 교권주의자들의 위선에 대해서 당당하게, “진리운동은 최후일각까지며, 전진이 있을 것뿐이고, 후퇴는 없다”고 선언하였다.
        우리 후배들에게 이런 당당함이 있는가? 믿음의 지조를 지키면서 한국교회를 향하여 회개와 개혁을 외치고 있는가? 아니면 회개와 개혁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는가?

        2. 우리의 현실
        후배들은 선배들과 같이 우리의 정체성을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운동’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회개와 개혁의 정신을 잃어버린다면, 고신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개혁운동 10주년 기념집회 강사였던 박 윤선 목사는 교회당 쟁탈 문제로 야기된 성도간의 법정 송사 문제를 개혁해야 할 현안으로 제시했다. 한국교회를 개혁하겠다는 원대한 목표에 앞서, 내부의 개혁을 호령하였다.
        박 목사가 주일 성수 연고로 교수직에서 해임 당했지만(1960,9월), 그 이면에는 교권의 횡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때로부터 고신교회는 인재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세평을 듣는다. 신학교와 교회 안에서 회개와 개혁의 선봉장으로서 고신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전파하던 분을 교권으로 해임한 것은 고신교회가 출범 취지에서 밝힌 존재 의의를 스스로 버리는 꼴이었다.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 성도간의 송사를 보라. ‘고소파’라는 혹평이 빈말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때부터 고신교회 안에는 현안들을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 풀기보다는 행정적이고 정치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분위기가 정착한다.
        이것은 회개로써 신앙의 순결을 유지하고, 신학운동을 통하여 한국교회를 개혁하겠다는 원래의 목표에도 타격을 입힌다.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교회들은 한국교회의 회개와 순수한 복음 전파를 통한 교회 개혁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담당하는 신학교를 재정적으로도 후원한다. 그렇지만 이런 관심이 결국은 신학교를 교권 투쟁의 결투장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고신교회 내의 정치 계파의 기원이다. 우리의 선배들은 교권주의자들이 휘두른 교권의 희생자가 아니었던가? 이런 작태를 개혁하기 위하여 세운 신학교가 고신교회 교권의 중심이었다는 것은 한국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출발 정신과 상충한다.
        안타깝게도 고려신학교는 정치 회오리의 중심에만 있었을 뿐, 능동적으로 교단의 여론을 주도하지 못했다. 고신교회가 영적 위기에 처한 이 순간에도 신대원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신학은 ‘교회의 교사’의 입지를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정치를 초월하지 않는 한, 교단의 여론을 주도할 수 없고, 정치와 교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를 향하여 개혁을 외치기에 앞서 고신교회의 내부 개혁을 부르짖었고, 그러면서도 교권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고신교회의 정체성을 품고서 고신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박윤선 선배가 그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신학교가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운동이라는 본래의 목표에 전념하지 않는다면 굳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3. 고신교회의 바벨론 포로
        부활하신 주님은 자기 교회를 신학교가 없이도 존속시키실 것이다. 병원과 대학교가 없어도 주님의 교회는 건재할 것이다.
        우리 선배들은 교회개혁과 더불어 국가까지 포괄하는 칼빈주의 문화운동을 사명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방법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기실은 그 사명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기초가 부족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 기관들의 인가나 확장 과정에서 행정적이고 정치적인 해법에만 치중하였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원리에 대한 원론적인 토론을 습관화하지 못했다. 따라서 불법, 탈법, 편법이 득세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고신교회의 바벨론 포로이다.
        고신교회의 현실은 학교법인의 관선이사 체제로 대변된다. 병원의 확장과 大學病院化, 이의 기초가 된 의과대학 설립, 이것들의 기초가 된 고려신학대학의 인가부터 어떤 일들이 있어왔는지는 잘 알려진 비밀이다. 이에 대한 회개와 개혁운동이 우리 중에 펼쳐진 적이 있는가? 한국교회를 향하여 회개와 개혁운동을 펼치려던 장엄한 목표는 출발선을 넘자마자 좌초하기 시작한다.
        우리 선배들은 교회와 신학의 연합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교회의 연합 운동은 유행처럼 힘을 받아가고 있다. 여기에 고신교회도 뒤지지 않고 있다. 고려신학교의 출범 자체를 한국장로교회의 첫 분열로 보려는 부담감도 묻어 나온다. 그러나 후배들은, 축출당하면서도 한국장로교회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선배들의 당당함을 잃어버리고 있다. 회개와 개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는 연합은 선배들이 받은 핍박을 욕되게 함이요, 고신교회의 존재의의를 부인하는 일이다.
        고신교회와 유관 기관들은 우리 선배들이 언급했던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스스로 믿음의 지조를 유린하고 있다. 진보주의라는 신신학 사상과 사이비한 복음주의, 허울 좋은 보수주의,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까지 사랑하여 달라는 화평론과 타협정신이 교권을 타고서 고신교회 속에 들어왔고, 교회를 현세생활처세의 도구로 삼고 말았다. 이것들은 총노회 발회식 선언문이 개혁하려던 바이었으니, 이제는 고신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4. 화합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고신교회는 회개하고 먼저 자기를 개혁해야 한다. 우리는 말로만 ‘전전 부패’를 외쳤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썩은 존재인지를 모르고 있다. 사유(赦宥)의 은혜를 구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성령님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을 위장한 이데올로기의 횡포 속에서 영이 죽고 말 것이다.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전 7:10)함이 지혜가 아니라 우매함인 줄 알지만, 한국교회를 향하여 회개와 개혁을 촉구하다가 ‘독선주의자’로 비난을 받던 선배들이 그립다. 후배들 사이에는 회개와 개혁정신도 실종하였을 뿐 아니라, 서로 포용하고 칭찬하고 사람을 아끼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예수님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고신교회여, 회개하고 개혁하며, 화합하라!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내침을 당하리라!(계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