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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우리를 부어 드리기
삼하 23:16-17 (2003년 9월 22일)
23장의 다윗의 장군 3명이 다윗 위해 목숨을 무릅쓰고 베들레헴까지 가서 물을 떠 온 것을 다윗이 하나님 앞에 부어 드린 23:16-17을 묵상하였습니다. 앤더슨이란 주석가는, “16-17. 이 구절은 군인들이 자기들의 왕 [다윗을 말함]에 대한 엄청난 헌신과 충성을 묘사한다” 제대로 한국어 성경만 읽어도 참 성도라면 이 해석은 순 거짓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무엘서는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이지 다윗왕조에 대한 역사적 서술을 핵심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사실 군인들의 충성은 다윗보다 더 큰 왕, 다윗이 충성하는 여호와 (2,10,12,16,17)를 향하여 나가고 있다는 것을 왜 못읽는지. 그 하나님 앞에서 주석을 쓰지 않고 거만하게 자기가 뭘 안다고 성경 앞에 문자쓰고 있는지.
때문에 16-17절의 이야기의 마지막 절정인 다윗의 물 붓는 행위가 16, 17절에 두 번에 걸쳐 꼭 같이 반복되어 기술되고 있는 것도 앤더슨은 관찰도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물을 붓는다 할 때, “붓는다 (나사흐)는 구약성경 전체 (23회) 모두에서 하나님에 대한 전제, 물붓는 제사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제사용어입니다. 더구나 “베들레헴, 베트 레험 빵의 집”은 여호와의 “집” (14,15,16,24) 에 대한 강한 상징을 보여 줍니다. 다윗의 행동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헌신의 제사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다윗왕 그는 자기 부하들의 섬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도 자기 부하와 함께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더구나 이것은 “생명의 피”이기 때문에 마실 수 없다는 것은  우상숭배자들의 피제사를 붓는 데 참여하지 않겠다는 고백과 일맥상통하는 듯 합니다(시 16:14). 다윗은 사람의 생명을 희생하는 그런 우상숭배를 거부합니다. 우상 숭배에 대한 거부는 자신의 안락을 위해 부하의 생명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결단이기도 합니다. 그 부하에게 생명을 무릅쓰고 물을 길러 가게 한 행동 이후에 앞으로 그런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다윗의 회개이기도 합니다.
물을 붓는 이 작은 행동은 단순히 다윗의 이야기를 너머서 이스라엘의 죄와 우상 숭배, 그리고 오고 오는 세상과 교회의 불신앙과 비도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으로부터 시작한 우상숭배, 그리고 그 아들 르호보암에게 보이듯이 자신의 일을 위해 백성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정치 사회적 불의 바로 이 때문에 북쪽 이스라엘도 멸망했고 남쪽 유다도 바벨론 포로로 갔습니다. 다시 돌아온 그들은 소선지자들이 보여 주듯이 여전히 우상숭배와 사회적 억압 (하마스, 22:3,48)를 계속합니다.
때문에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을 새롭게 하시고, 당신의 죄사유함과 하늘에서 지속적으로 중보하심과 성령으로 함께 하심을 통해 이 땅에 참 신앙과 윤리를 실천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불의를 즐기는 사람들도 교회 문을 드나들면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소위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에게서 우상숭배와 불의를 목격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주신 예언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자기와 돈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기 보도 더 한다고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딤후 3장). 그들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많은 큰 일을 하였는지, 얼마나 부자인지, 설교를 잘 하는지, 그것을 우리가 수사할 임무는 없습니다. 그들이 과연 구원받았는지, 아니면 믿음이 약해졌는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곳곳에 종교적 위선자와 사기꾼과 독재자들이 있기에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이 그런 우상숭배자와 독재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혹,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가로채고, 형제를 종 취급하는 잘못을 범했다면 (오늘 다윗이 부하들에게 했듯이). 회개하고 그 물을 여호와 당신 앞에 부어 드려야 할 것입니다 (다윗처럼). 때로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과 개인의 복지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섬기려 하더라도, 심지어 아주 자발적으로 그렇게 섬기려 하더라도, 우리는 섬김받기를 거절해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인 성도간의 섬김이 아니라 오늘 처럼, “피” 와 “생명, 혹은 영혼” (17) 즉 생명을 우리에게 바치려 할 때는 거절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최근에 구속된 김목사처럼 음행과 횡령의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아버지 하나님께만 바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우리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것을 우리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 드려야 할 것입니다. 당신께 생명의 물을 바쳐드리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부으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피를 쏟으시고, 바울이 교회를 위해 자신을 전제로 부었듯이, 성령께서는 이 시대에 풍성히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며, 바울처럼, 교회를 위해 자신을 부어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먼저 우리에게 부어 주셨으니 우리도 당신에게 부어 드리고, 교회를 위해 부어 드릴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며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이것이 산상수훈에 나오는 복입니다.

주안에서 평화가 넘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빕니다.

해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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