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 노래에서 기쁨의 노래로 기본 카테고리

사무엘하 22  유해신 (09/22/03)
오늘은 삼하 22장을 묵상하였습니다. 이 시편은 삼상 1장에 나오는 한나의 통곡의 기도에 대한 성취로써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두 시편에서는 많은 단어들이 반복됩니다. 반석 (2:2  22:2,32,47,47), 높인다 (2:1,7,8,10  22:28), 비천하게 하다  (2:9  22:29), 드리운다 (2:4  22:33,40) 영원 (1:22  22:51), 바람/성령/영 (1:15  22:11,16, 23:1), 악한 (벌리알, 1:16  22:5, 23:6) 등. 삼상하의 메시지는 이 두 이야기가 상당히 보여 줍니다.  다윗왕과 사울왕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고통에서 부르짖을 때 구원으로 인도하시고, 그래서 성도는 마지막에 찬양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없어서 하나님께 통곡한 한나, 그리고 외국의 침입으로 고생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 사울의 살해 음모와 자신의 죄와 아들과 부하들의 죄 때문에 고통하던 다윗, 이들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당면한 여러 문제상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 속에서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잠잠하지 않으시고 반응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구원 (여호수아라 발음되는 여러 단어들 3,3,4,19,26,36,36,47,51)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 다윗은 국내와 국외의 적으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다른말로 자비/인자 (헤세드, 26,51) 라 합니다. 이의 반대말은 흉악/강포한 자(하마스  3,49)입니다. 하마스는 사회적 폭압 혹은 억압을 말합니다. 적들의 다양한 공격, 갑작스런 불경기로 당하는 고통, 다른 사람의 오해 등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은혜와 자비가 되십니다. 여기 다윗이 노래하는 자비는 그냥 우리에게 심리적인 평안한 느낌만이 아닙니다. 실제 삶 속에서 그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 노래는 실로 그의 인생 전체에 대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순간 순간 고통을 당하더라도 인생 전체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편은 모든 것에 대한 결론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시작의 예고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노래합니다 (51). 바로 이스라엘,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다윗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다윗 왕조가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에 기초한 간증입니다. 이 간증은 과거의 회개로, 한 사건에 대한 추억 만이 아닙니다. 구체적 경험에 대한 간증은 미래에 계속될 하나님의 자비로운 일하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다윗 이후 비록 이스라엘은 다시 죄로 인해 바벨론의 포로의 고통을 당하여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도 초대교회 이후 2천년동안 여러 죄와 핍박으로 고난받아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무엘서에서 읽으며 만난 하나님, 당신의 백성을 악과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그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그 핵심은 기름부은 자, 즉 메시야 (51)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오늘도 은밀한 중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 그 교회를 세우고 새롭게 합니다.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윗이  폭풍가운데서 경험한 하나님의 성령님 (바람은 성령과 같은 뜻임: 11) 오늘도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며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여 성화의 사역을 이루시고 교회에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세우고 신령한 전투를 하게 합니다.
때로는 한나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기도생활이 술취함/방탕함으로 억울하게 오해 받더라도, 심지어 소위 교회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오해 받더라도 하나님은 구원을 우리에게 이루십니다. 때로는 어처구니 없게 다윗처럼 죄를 짓고, 아들에게 쫒김을 당하는 고통이 있더라도 구원은 일어납니다. 그 고통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니라, 그 고통 가운데서, 고통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고통은 괴롭지만, 그 순간에서 하나님은 은밀히 일하십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을 이룹니다.” (롬 8장). 그 구원의 사실이 환히 드러나는 날 그날 우리도 다윗처럼 확신에 찬 찬양을 할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교회는 하나님께 원한을 풀어달라며 고통스런 통곡기도를 하기도 하지만 (계 6:9-11), 구원의 노래를 부를 날이 오며 (계 15장), 마지막 인생의 종착역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계 22:4). 한나의 통곡과 다윗의 찬양은 오늘 우리들이 일상에서 경험하고 예배에서 불러야 할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희비가 어우러 져 있는 성도의 노래는 하나님 당신이 항상 들으시고 그리스도 당신께서 항상 중보하시고 성령께서 함께 불러 주시는 노래입니다.
때로는 골방에서 외로이 노래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고통의 한을 노래할 때 세상은 즐거워 탄성을 지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한 어린 노래를 함께 부를 형제 자매들과 영적 가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우리 죄를 사해 주신 성삼위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승리와 구원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우리는 한어린 노래를 부를 때도 완전히 까무러치지는 않고 약간의 기쁨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만족과 고통은 영원한 그 나라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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