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바라본 푸른 초장: 삼하 17장 기본 카테고리

삼하 17장
2003년 9월 12일 (금)

오늘은 삼하 17장을 묵상하였습니다. 여전히 다윗은 쫓기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압살롬으로부터 다윗을 구원하시고, 압살롬의 참모진들 교란시키며, 다윗에게 이방인들을 통해 음식을 공급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다윗은 쫒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련한 군대지휘관으로서 다윗은 이미 압살롬 부대의 주요 참모진으로 후새를 침투하게 하였고, 후새와 자신 사이의 첩보요원으로 요나단과 아히마아츠를 압살롬의 지휘천막 근처에 숨어 있게 하여서 정보를 계속파악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손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지만 용의주도하게 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인생의 한 순간, 아니 이스라엘 역사의 이 한장면도 다윗 왕의 모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략이 그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왠일인지 압살롬은 다윗을 배반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아히도벨 보다는 다윗에 은밀히 충성하는 후새의 말을 더 믿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사건 앞에서 우리에게 바른 해석을 보여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해를 불러 오기 위해서, 아히도벨은 좋은 작전계획을 파하기로 “명령” (16)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히도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 집을 전체 “명령” (23)하고 목매달고 자살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의 자살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복선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보낸 스파이는 비록 압살롬의 부하에게 잡힐뻔 하였지만,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다윗에게 빨리 요단강을 건너 동쪽으로 도망하라고 전달합니다. 다윗은 강을 건넜고, 압살롬은 다윗을 추격하여 강을 건너 옵니다.  비록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대부대를 이끌고 다가오지만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압살롬의 마음을 움직여서 다윗의 살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위기의 순간에 찾아온 하나님은 그 위기를 넘기게 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나아가 당신의 자녀가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것도 예기치 않게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였던 암몬 족속에 속한 사람을 통해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오늘의 이야기도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지속적인 역사에 대한 한 단면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다윗 이전의 이스라엘의 구원과, 다윗 이후 우리들이 받게 되는 구원에 대해 확신을 주기 위해 성령께서는 이 이야기를 기록해 두신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여러 표현들은 너무나도 이스라엘이 400년 전 바로의 손을 피해 구원받은 사건과 암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무엘 하에서는 좀체 사막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고 나올 이유도 없습니다.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과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사막에서 싸웠고 (2:24) 그 외에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사막에 도망다니는 장면에서 집중적으로 이 단어가 쓰입니다 (15:23,38; 1:2; 17:16,29). 구약성경에서 사막이 주는 영상은 바로 출애급 후의 사막입니다. 그들은 급히 사막을 떠나 요단을 건넜는데, 요단도 삼하에서 주로 이 곳에 쓰입니다. 과거 이스라엘도 바로의 압제를 벗어나기 위해 사막의 여행을 통해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갔듯이, 이제 다윗도 요단을 건너서 사막지대를 벗어납니다.
물론 이번 여행은 결코 영광스런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요단강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왔지만, 이제 다윗은 바로 그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서 벗어나갑니다. 밧세바를 통간하고 그 남편을 죽인 죄의 심판으로 그 자신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고생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의 번성이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죄 때문에 당신의 백성이 벌받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완전히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강을 건너 구원받게 합니다.
그런데 다윗시대의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과거 출애급의 구원의 연속일 때, 요단 강 건넌 것만이 아니라 홍해를 건넌 것 까지도 되새겨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바로의 군대도 감히 홍해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왕 다윗왕과 그를 따르는 초라한 무리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압살롬과 그의 대부대도 강을 건넜습니다 (24). 우리는 압살롬이 강을 건너다 죽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애급 사람 같은 완전한 이방인이 아니라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를 대적하는 압살롬은 강을 건넌 후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향해 나갑니다. 바로의 군대의 수장장면은 압살롬의 버림받은 책사 아히도벨이 연출합니다. 과거 출애급 사건과의 연관 때문에 아히도벨의 자살 이야기는 다윗이 요단강을 건넌후, 그것도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다 건넜다는 표현에 이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22).
다윗이 건넌 물 (마임, 11,13,20)은 바로 홍해를 건넌후 출애급 15장에서 홍해를 나타낼 때 쓴 표현이기도 합니다.  출애급 후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찬양하라 (터힐라, 출 15:11)과 음이 아주 유사한 “먼저” (터힐라, 삼하 17:9)에 쓰여지고 있습니다. 출애급기에서 아주 자주 나오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셨다는 단어 (지바)와 그 명사형인, 여호와의 계명 (미즈보트)를 상기시키면서 “명령”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16,23). 출애급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 텐트를 만들라는 명령에 따라 만들었던 그 텐트 (마사흐)가 여기도 등장합니다. 바로 여인이 다윗의 정탐꾼을 덮은 그 천이 바로 성막 천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 단어입니다 (19). 홍해를 건넌후 메추라기와 만나로 먹이시고,또 사막에 샘이 터지도록 하신 여호와께서는 오늘 다윗에게도 이방인을 통해 먹을 것과 마실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과거 출애급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새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은 오늘도 변함이 없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에게 계속됩니다.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시고 훈련시키는 그 순간에 때로는 이렇게 처참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비기독교인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기독교인에게는 이런 힘든 일이 생기는가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징벌과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당하는 특권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우리를 출애급의 죄와 고통에서 구출하신 당신 하나님은 여전히 구원사역을 계속하십니다.
새로운 모세, 새로운 이스라엘로 오신 예수께서도 “애급에서 나왔습니다.” (마 2장), 헤롯의 살해계획을 피해서 애급으로 갔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당신ㄷ이 백성이 겪는 죄의 비참을 함께 겪으면서 출애급 행진에 함께 해주십니다. 그분의 진정한 출애급은 바로 승천에 있습니다 (누가 9:21절은 예수님의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당신의 엑소도스, 즉 출애급을 이야기 하였는데, 이것은 당신의 승천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의 여행의 길은 하늘로 향한 출애급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곳에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오늘도 이 광야생활, 고생스런 세상 가운데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향한 출애급 길로 인도하십니다. 비록 이땅에서 우리를 추격하는 핍박자와 사단의 공격과, 그리고 여전히 남은 우리 안의 죄와, 그 죄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징벌로 우리는 고생하지만 우리에게 위대한 출애급의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지금 위대한 출애급의 여정에 있습니다.
목숨을 건진 다윗을 기다린 것은 바로 음식상이었습니다. 천국에 가서 누릴 우리의 풍요로움도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를 하나님은 충분히 먹여 주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우리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십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아마 다윗은 그 사막길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푸른 초장에 들어갔습니다. 여호와 나의 목자 나 부족함 없도다. 내가 죽음의 그들이 드리운 골짜기를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비롤 원수들이 나를 둘러싸 있을지라도. 고통의 골짜기 가운데, 적들의 추격가운데서, 베푸시는 은혜. 바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잔칫상을 베풀어 주셨으니 내 잔이 넘치도다.
시편의 찬양은 편하고 일이 잘 될 때가 아니라 죽음 같은 시기에 노래하는 노래입니다. 그 고통의 암울함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5병이어의 기적으로 풍성히 당신의 백성들을 먹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의 마지막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여호와 당신의 보호를 받지만, 진정한 소망은 당신의 영원한 나라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출애급의 최종종착지는 천국입니다. 거기 앞서간 성도들, 다윗과 모세가 있고, 바울과, 어거스틴과 길선주 목사와 손양원 목사, 주기철, 한상동 목사가 먼저 가 있는 그 곳, 바로 우리의 목자장께서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는 그 곳, 그곳을 우리는 바라봅니다.
다윗의 실패와 징벌가둔데 베풀어 주신 출애급의 축복은 특히 바벨론 포로기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깊이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들처럼, 약속의 땅에서 쫒겨난 다윗, 그 다윗에게 임하신 새로운 출애급의 축복, 인도의 축복은 포로기의 백성들의 희망이었습니다. 오늘, 교회의 포로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희망은 그처럼 망가진 지도자들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진노와 동시에 임하실 출애급의 약속의 새로움입니다. 당신의 신부는 다시 새로와 지고 구원받고, 풍요의 영적 삶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축복을 받을 성도는 다윗처럼, 비통함 가운데 회개하며 새 삶을 각오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것이고, 출애급의 축복은 당신께서 은혜로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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