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질병, 비난 중에서 받는 복 (시편 41편) 기본 카테고리

Ps 41장
11월 3일 (월)
이 시편은 몇가지 점에서 중요합니다. 첫째는 5부로 구성된 시편의 제1부의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로다 아멘 아멘” (13절)은 이어지는 다른 권들의 결론에서 반복되는 “찬양”과 “아멘 아멘” (72:18-19;89:52; 106:18)을 통해 1권을 결론짓고 있습니다. 41편에만 하더라도 질병, 자신의 죄, 다른 사람들의 조롱 등의 문제상황속에 시인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문제를 하나님께 아뢴 후, 시인이 최종적인 말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 그 분의 일하심에 대한 찬양입니다. 41편은 38편에서 시작된 질병의 문제에 대한 신앙인으로서의 씨름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38편이후의 시편 그리고 1편이후의 시편 제1권의 결론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시편에서 등장하는 신앙인 혹은 의인의 복에 대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복되도다 (아세르)는 단어는 시편 1:1, 2:12에서 사용되어 시편 전체의 주제를 도입하였는데 이제 41:1에서 다시 등장하여, 복이라는 주제를 수미쌍관식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 즉 “의인”은 복되다고 성령님께서는 선언하시며 그들은 “번성”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 길을 인정하신다”고 덧붙입니다 (1편). 의롭게 사는 자가 복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실제적으로 번성하며 행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3편이후의 시편은 의인이 당하는 고난의 경험 속에 하나님에 대한 울부짖음을 주로 다루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합니다. 의인은 항상 번성한다는 것이 시편의 선언이었는데 왜 의인인 내가 번성하지 않는가 이렇게 고생하는가? 이 물음이 시인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그 물음이 시편의 신학을 긴장감있게 끌어갑니다.
고통스런 부르짖음 가운데서 40:4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복되다 선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흙구덩이에서 나를 건지시고 견고한 곳에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40:1-3). 이 힘찬 간증으로 다윗의 고민은 끝난 듯 하였지만 실은 40편의 마지막절은 “나의 불쌍하고 가난한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고 도움을 간구합니다. 40:1도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는 그런 의로운 삶을 사는 나를 주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기에 복되다는 찬양으로 시작하고 병의 치료와 번성에 대한 확신의 신앙고백을 하지만 (41:1-3), 실은 고통의 탄원이 이어집니다. 그는 병가운데 있었고, 더구나 그 병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인 것을 알았기에 (4절), 주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더구나 “나”을 원수로 생각하는 자들은 병문안을 한다고 와서는 내가 병으로 죽을 것이라며 좋아하고 있으니 너무 분통이 터진다고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심지어 내 사랑하는 친구들까지도 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5-9절).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 욥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기에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10절) 자비를 베푸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순간에도 다윗은 병상에서 일어나지 않은 상태인 듯합니다.  아니 아직 병 중에 있기에 이처럼 애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나를 구원하시는 분인 줄 알고, 또 과거에 그런 분으로 경험하였지만, 지금 나는 여전히 병중에서, 비난 가운데서, 그리고 병의 원인이 되는 나의 죄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나의 죄/고통 이 두 현실 앞에 우리들 대부분의 신앙적 고뇌가 있는 듯합니다. 교리적 확신이 있지만 그것이 아직 충분히 경험되지 않을 때 고민스럽게 부르짖습니다. 이 불편함과 긴장은 고통만이 아니라 실은 복입니다. 나의 죄의 깊이를 다시 돌아보고, 그리고 절망의 깊이에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강한 훈련코스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다윗이 한 것은 기도만이 아닙니다. 영혼의 완전함, integrity (타밈, 12절), 즉 정결한 마음, 온전한 마음, 하나님과 사람앞에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온전함을 추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투쟁은 나로 하여금 신앙과 삶의 성결에 관한 문제로 승화시키기에 나는 이 죄, 비난, 질병 가운데서도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이 되어가는 일에 단호하게 일관성있게 서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나의 확신이 있습니다. 나의 탄원과 성결한 삶에 대한 결단 가운데서, 나는 당신 하나님의 은혜의 일하심을 확신합니다. 당신은 나를 기뻐하시는 줄 압니다. 당신은 결국 나를 나의 온전함 가운데 굳게 붇들 줄 믿습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변화산 상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선언하신 “내 기뻐하는 자”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구약 헬라어 성경과 신약성경의 구절은 일치). 당신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신 그 기뻐하심을 나도 받을 것이다, 그 특권적 사랑의 관계 속에 내가 있다는 확신을 말합니다. 나아가 나의 성결한 삶을 나 혼자의 힘에만 맡겨두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나를 굳게 붙드시고 도와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내 비록 죄를 지었고, 때문에 병들어 있고, 주위에는 사면초가지만, 그러나 이 가운데서 나는 당신께 부르짖으며 의의 길을 걸어 가겠습니다. 나의 헌신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다만 당신께서 지금 나를 기뻐하시고 나를 붙들어 주심을, 당신이 나를 인격적으로 사랑해 주시고, 나에게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저는 압니다. 나는 이것을 신뢰합니다. 아직 비록 병상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고 내 원수들과 친구들은 나를 조롱하지만 그러나 지금 이미 저는 성결의 길을 걸어가며 당신의 사랑과 구원을 확신합니다.
이 시편은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나 이미 찾아오신 해결 가운데 문제와 싸우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각자의 문제들 – 죄, 질병, 비난 등—이것들과 싸웁니다. 예수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런 힘든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복은 이미 문제와 싸우는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인생이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는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과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일시 하나님이 없어 보이는 이 상황은 “보지 않고 믿는” 우리의 믿음을 더 강화시킵니다.
오늘의 시편이 약간 비추고 있듯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중보사역은 우리의 확신을 더 굳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를 누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사단에게 온전히 넘어가지 않도록 기도하시기에, 그 계시로 알려주신 영적 세계를 의지하며 우리는 하루 하루를 지탱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영적으로 무장시키기에 이 힘든 훈련 코스를 포기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때문에 우리의 울부짖음과 때로는 넘어짐도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과 성령님의 지속적인 일하심의 경계 안에 일어납니다. 고통과 믿음 이것이 우리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그러나 고통의 투쟁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우리들이 지금 이 땅에서 조그만 행복만 맛보지만 그날 이후에는 땅을 완전히 차지하고, 무엇보다도 얼굴로 그 분을 대면해 볼 것입니다. 이 긴긴 천국향한 소망 가운데, 그 긴 여정의 한 부분으로서 오늘도 우리는 부르짖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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