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박영돈 교수님에게 제출한 페이퍼 기본 카테고리


다들 건강하시지요?
박영돈 교수님께 제출한 인간론에 관한 글 한편 올립니다. 해은이가 신학이야기 난으로 옮겨 주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지난 번 박서방 집에서 다들 재미있게 모인 것 같군요.여름 잘 보내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사람: 죄와 거짓, 그 해결책

                                                              유해신

Richard. Niebuhr, Watchman Nee, Scot Pack, 그리고 Cornelius Plantinga의 책들은 단순히 성경의 가르침 혹은 신학적 입장들을 논리적으로 종합하여 전달하는 이상의 생생함을 담고 있어 보입니다. 성경과 신학적 입장들을 종합하여 전달하기만 하는 책들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삶의 구체성과 적용성이 없이 단순히 공허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니버는 인간론과 죄의 문제를 인간내적 심리학, 국가와 같은 집단의 죄 등에 구체적으로 관련시키고 그 해결책을 사랑의 삶에서 찾고 있습니다. 니는 내적인 인간 (영) 과 외적인 인간 (혼) 을 분리하며, 영이 혼의 억압에서 벗어나 실제적 자유함을 누리는 삶을 소개합니다. 팩은 심리적 부적응 현상을 심층분석할 때 문제의 현실을 회피하며 거짓말하는 죄가 근본원인이며 그 해결책은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는 데 있음을 지적합니다. 플란팅가는 인간의 근본문제는 죄이며 그 죄는 자기기만, 중독 등으로 나타나고 죄의 해결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 하나님, 대상 (인간과 자연)이 함께 조화되고 번성하는 샬롬에 이른다고 소개합니다.
이 책들은 일반적으로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몇 년째 우울증으로 시달리던 제 자신을 돌아보고 해결해 가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울증은 대개 방치되었던 자아의 참 모습을 관찰하도록 촉구하는 무의식의 자아의 외침이고,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더 관망하고 자기를 더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재점검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우울증 경험은 그 심리적 부적응에 함께 잠복해 있던 미묘한 죄들을 잡아내고 씨름하게 하였습니다.  실존의 나를 고민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고 그 과정에서 일반적 사람에 대해 사색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병적 현상을 강화시키는 죄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처방책 (윤리저거 책임과 은혜의 현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I.  실제적으로 사람보기
사람은 누구나 착한 면과 악한 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선설과 성악설은 모두가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립니다. 성경적 맥락에서 사람의 착한 면은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자기를 초월하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초월성과 자유를 가집니다. 라인홀더 니버는 사람의 사람됨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여러 가지 행동의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자유에 있으며 특히 그 자신도 상대화할 수 있는 초월성에 있다고 합니다. 동양적 세계관에서도 인간은 천과 지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사람은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 창조성은 인간이 신과는 다른 한계들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지식이나 의지, 도덕성, 감정은 제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한성은 그 자체로서 죄가 아니라 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선하고 한계있게 창조된 인간도 그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창조된 한계성을 넘어서 어두움과 악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였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상의 선물 자유의지를 사람은 악한 일, 하나님을 배반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라인홀더 니버는 자만이 인간의 타락의 근본원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게 지었으나 인간은 악한 길을 선택한 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 후에도 다른 피조물과는 특별한 위치를 가집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고귀함은 인간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래 주신 것을 넘어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타락 후에도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능력은 유지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이며 무엇이 인간에서 선한지를 계시하십니다 (롬 1:20, 2:14). 기본적인 신앙과 윤리를 계속 계시하는 그 계시의 은혜 때문에 인간은 특별한 위치를 가집니다.
죄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하나님의 형상 (자유와 피조성)과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행복이기도 하고 인간의 악을 계속하게 하는 바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계시가 악의 바탕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악을 조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속되는 은혜가 인간에 의해 악한 목적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문제는 죄에 있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에서 말하니까 받아들이고,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말해 왔으니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체적인 진실입니다. 죄가 진짜로 인간의 문제의 참 원인이라는 것은 죄를 대충 덮어 버리려는 사람들의 거짓과 함께 볼 때 더 명백해 집니다.

II.  진단: 죄와 거짓
네 명의 저자 모두 사람은 죄를 은폐하기 위해 거짓을 행한다고 지적합니다. 플랑팅가는 사람이 자신을 실제 보다 더 잘 보이게 하는 위선적 행동을 할 때 처음에는 자신이 남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중에는 자기도 스스로에게 속아서 (자기기만) 자기가 위선적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팩은 자기기만의 예로서 아이가 없는 부부 중 남편이 전혀 직업도 가지지 못하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며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상담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그 남편은 자신이 아내에게 어린아이 노릇을 하고, 그 부인은 남편을 아이의 대용물로 키우는 이상한 체험을 즐긴다고 분석합니다. 팩은 우리가 삶의 문제에 용기있게 직면하여 해결하기가 싫어서, 문제를 회피하려다가 오히려 항상 걱정과 집착증에 빠져서 정신치료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문제를 회피하면서도 그것을 감추어 버리는 것을 팩은 거짓된 행동, 즉 악이라고 지적합니다. 자신도 자기가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상담자가 문제를 지적해 주면 거짓을 깨달고 벗어나는 경우는 다행입니다. 그러나 자기아들이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자신들이 주위사람들로부터 좋지 못한 평판을 받는 다는 생각에서 상담자의 설득을 끝내 거절하는 상류층 부부들의 심한 거짓을 팩은 경험하였습니다.
워치만 니는 “외적인 사람”이 깨어지기 전에 행하는 외면적인 선에 대해서, 자신이 정말 선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라고 합니다. 성령에 의해서 인간의 내면의 자기가 선을 행하는 참된 선행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니버는 사람들의 거짓은 개인적 행동에서 보다 집단적 행동에서 더 심각해 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전쟁할 때 자기 나라의 잘못은 전혀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진짜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짓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계몽주의 (관념론)과 낭만주의, 공산주의의 공통적 거짓은 모든 죄와 악은 인간 자신에게 있지 않고 인간 밖의 사회와 문화에 있다는 것입니다. 팩도 미국, 나아가 인간성은 집단적으로 악을 행하면서도 자신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기만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또다시 한번 더 죄를 짓는 것이며 이 때문에 인간은 더 불안해 진다는 것을 니버는 지적합니다. 팩이 사례로 든 강박증 환자도 자신의 힘든 현실을 제대로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다가 그 불안증세가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III.  처방: 윤리적 책임과 은혜의 현실
그러면 죄와 그것을 감추려는 거짓의 문제에 대한 처방이 무엇인가요? 팩은 인간의 정서적인 병적 현상은 게으름과 자기도취욕에 있다고 단언합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지 않고 게으르게 앉아 있을 때 인간은 정신적으로 병든다고 합니다. 모든 것 심지어 주위 사람들까지도 자기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자기도취욕에 빠져 있는 것이 정서적 질병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 해결책은 게으름과 싸워 근면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일상의 책임을 다하는 것, 그리고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현실에 적응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니버도 죄의 근본원인은 인간이 자기주장만 하는 자만심에 있고 그 다음 원인은 자연적 욕구를 따라 행동하는 쾌락추구에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자만심은 자기도취욕, 쾌락추구는 게으름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죄와 거짓의 해결책은 인간의 자유의 올바른 실천, 즉 하나님, 자기 자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으며 그 중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플란팅가도 인간문제의 해결은 샬롬 - 즉 하나님, 자아, 자연과의 평화의 회복에 있다고 합니다. 워치만 니는 인간의 핵심문제는 영의 해방, 혹은 외면적 자아가 깨어지는 데 있다고 합니다. 영의 해방은 인간의 영이 성령과의 뒤섞임에 있으며, 이 영적인 해방은 한 순간의 경험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동시에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워치만 니는 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뒤섞인다고 표현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영이 구분되지 않는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분의 주장의 동기는 하나님과 사람을 신비주의적으로 일치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스콧 팩을 제외하고는 네명의 저자 모두가 인간문제의 해결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에 있다는 데 일치하는 듯합니다. 실은 팩도 귀신추방에 대한 두 번의 경험을 말하면서 모든 악에는 사단이 관련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해방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문제의 해결을 위한 처방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라인홀더 니버는 사랑의 실천을 말하지만, 예수님의 구속사역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언급이 그냥 없습니다. 변증법적 논리에 기초하여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에 있는 자유와 초월능력에 기초하여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알지만 그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인간의 문제인데, 니버의 말은 듣기는 좋지만 해결의 정곡을 찌르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물론 니버가 말하는 사랑의 실천, 팩이 말하는 부지런함과 자기 중심성 벗기, 플란팅가가 말하는 샬롬은 우리의 윤리적 책임입니다. 그러나 지식을 넘어서 영적 변화와 영적 해방을 말하는 워치만 니가 좀 더 정확한 해결책을 말하는 듯합니다. 워치만 니는 말하기를, 우리는 성령에 의해 우리의 영이 온전히 해방되기 전에도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성령의 해방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인간문제의 핵심은 죄에 있으며, 죄는 실은 인간자신의 문제입니다. 인간 그 자신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비록 인간은 문제를 뛰어넘는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 자유는 죄의 문제를 만드는 것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 범위 내에서 죄와 싸우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니다. 그 문제의 해결은 사랑을 위한 책임적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문제의 해결은 참된 해결자 되신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성령의 행하심에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책임감을 주시고, 우리에게 행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지속적 내주와 일하심에 우리가 동조되고 동화되고 감화되고 힘을 얻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선한 열매를 맺어 가십니다. 그 때 우리는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힘껏 성령에 순종하며 해결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문제해결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서, 거짓을 벗어나는 일에서 우리가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거짓과 위선으로 끝나 버린다는 위험을 알고서 그 분의 오심과 일하심을 기도하고 함께 나가는 것이 인간문제의 해결책이가고 생각합니다.
<읽은 책>
Nee, Watchman. The Release of the Spirit (자아가 죽을 때). Indianapolis: Sure Foundation, 1965
Niebuhr, Reinhold. 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I: Human Nature. New York, 1941.
Pack, Scot. People of the Lie (거짓의 사람들).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83.
Plantinga, Cornelius. The Way Not Supposed to Be. Grand Rapids: Eerdman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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