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고사를 앞둔 이나에게: 우리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 다오. 기본 카테고리

이나야, 너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다.
시험은 항상 마지막과 시험칠 때가 가장 중요하다. 실력과도 관계있지만 시험은 게임처럼 잘 하는 방법들이 있다.
지난 번 길게 이야기 했듯이 마지막 총정리를 최소한 세 번은 해야 한다.
1차: 시험 1주 전까지
2차: 시험 1주전 한 주간 동안 (이 주간이 가장 중요하니 그 전에는 공부 좀 적게하며 체력 보강했다가 시험 한 주 부터 마지막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초인적인 집중을 해야 한다. 그 동안 공부한 3년간 전 과정을 다시 전체적으로 훑어 보면서 꼭 외워야 할 것, 그리고 왠지 시험에 나올 듯 한 것. 그건 절대 외워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런 내용은시험에 나울 가능성이 상당히 많다.
  1) 전체적으로 3년간 교과서 다 갖다 놓고 하루 동안 목차를 자세히 읽고 대단원은 외우고 전체 머리 속에 집어 넣어라. 특히 교과서의 서문과 "이번 단원의 목표"는 전체적인 큰 개념을 잡는데 중요하지 천천히 읽으며 머리에 넣어라 시험, 특히 이해력을 묻는 문제는 그 단원의 목표에 이미 나와 있다. 혼자 중얼거리며 "그래 이단원의 목표는 이렇지. 예를 들면, 한국사에서 중요한 문제는
- 고대: 한반도 동이족은 어떻게 한족과 문화적으로 다른가? 세형청동검 (날씬한 구리 칼)은 동이족의 독특한 청동기 문화를 보여 준다 (세형 청동검은 시대 전체를 묻는 문제에 나올 수도 있지만 단답식에도 나온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청동기구이기 때문이다.)
-고조선: 7-3세기 BC, 성경역사에서는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는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의가 강해서 선지자들이 왕과 백성과 지도자를 꾸짖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혼내는 때다. 결국 회개하지 않고, 바벨론 포로로 식민지의 억울함을 경험하는 시기인데)
  어쨋든 우리는 중국문화의 영향으로 종교와 법제도가 상당히 정제된 것을 보여준다. 지금 자존심 세우는 화란사람이나 독일 게르만족, 영국 겔트 족, 프랑스 프랑크 족은 이 시대를 나타내는 기록되 문서도 없는 흑암기였다. 뭐, 국수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가질 필요잇지 않겠니?
고조선의 단군신화와 팔조금법 중 남아잇는 3개의 조항은 실은 하나님의 일반은총 (혹은 natural knowledge of God)을 관찰할수 있는 좋은 사료다.  하나님 환인의 환웅이 백두산에 내려와 곰과 호랑이 만나서 결혼한 이야기는 신화속에 자연신학과 역사사실을 담고 있다. 우선 우리 조상들은 자기의 존재와 문화의 기원을 오만한 18세기 이후의 계몽주의나 부시같은 패권주의자들처럼, 인간에게서 찾지는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고조선의 신화를 믿은 사람이 과학기술로 남의 주권국가 이라크를 멋대로 공격하고 "하니님의 정의"를 말하지만 실은 무기생산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챙겨주는 부시보다는 우리 조상이 더 경건한 것 같다. 단군신화는 고대의 우리 조상들이 자신들의 생명의 기원을 하나님에게서 찾는 그런 일반은총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모라서 1장 20절 이후에서 말하듯이, 그들의 자연적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 조상의 욕심과 죄 때문에 우상숭배와 자연숭배, 그리고 토테미즘으로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에게도 하나님은 끝없이 비와 곡식의 풍성, 국가 등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그리고 인간의 도덕적 규범을 계시하셨다. 그래서 단군신화는 환웅이 풍사, 우사를 데리고 내려왔다고 말하면서, 자연의 혜택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다.
팔조금법 중 남아 있는 살인금지 (십계명 중 6계명), 도적 금지 (8계명), 첩들의 시기금지 (7계명 간음 금지와 5계명 부모존중의 양심의 도덕법이 고대국가의 남성 중심주의에 의해왜곡된 형태다) 등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심어 준 양심의 법 (롬 2:15)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끝없이 당신의 존재와 당신의 법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셨으니까 팔조금법과 단군신화가 가능했다.
더구나 단군신화와 팔조금법을 연결해 보면 우리 조상들에게 도덕은 단순히 인간관계 이상의 경건함 혹은 종교성이 있었던 듯 하다. 단군을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는 것도 물론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왕에게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중국, 이집트, 고대 근동의 타락과 왕권전제이데올로기로 하나님의 법을 왜곡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의 정치질서와 도덕질서, 일종의 고대의 실정법의 뿌리를 하나님의 아들 환웅으로, 다시 하나님인 환인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인간삶에 항상 함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경건을 보여준다.  도덕법은 인간의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명과 문화를 주시며 (distributive justice, 행정부 기능의 하나님) 나아가 인간 삶의 도덕법을 주시고 (입법부 기능의 하나님), 그리고 그 법에 따리 심판을 행하시는 (retributive justice, 사법부 기능의 하나님) 그 하나님의 계심과 매일 일하심에 뿌리를 둔다고 믿은 것이다 (실은 칸트가 도덕의 기초를 하나님이 도덕 왕국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세 기능을 다 수행하는 왕되심에 찾고 있다)
혹 오해할까봐 다시 말하는데, 우리 조상이 구원을 받았고,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 아니고, 단군신화와 팔조금법은 그 시대도 하나님은 “각 민족에 경계를 정해 주시고 비와 호흡을 주시는 분”으로 일하셨고, 우리 조상은 그 하나님의 일하심과 계시에 반응하여 종교와 문화를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외에는 구원이 없으니 그들이 구원받았다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지옥에 간다하더라도 요즘처럼 이혼하고, 음란폭력적 영화, 게임만들어 청소년들의 영혼을 죽음에 빠뜨리는 장사치들보다는 훨씬 편한 지옥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편한 지옥”이 어디 있겠나만은.

내친 김에 우리 나라 사상사 맥락에서 정치사를 조금 정리해 줄까?

2. 고대의 삼국은 오늘날 정부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헌법도 없고, 고구려 신라 백제 사이에 휴전선도, 3년간 의무 복무도 없는 시대였다. 백성들끼지 서로 미워하지도 않았고, 다만, 부족-읍락국가의 지배자들이 자기들 욕심을 이루려고 백성에게 세금을 징집하고 전쟁을 해서 자기들은 왕궁에 남아있고 백성들을 죽이던 시대였다. 효녀 지은의 이야기나 다양한 이야기들은 일반 민중들이 농사짓다가 갑자기 전쟁터에 나가 가족을 읽고 하는 혼란들을 보여준다.
어느 시대나 정치를 하려면 종교나 사상의 이데올로기로 백성들을 통제한다. 자연적 공동체의 종교는 지방 분권적인 토속신앙 특히 지역의 수호신을 섬기는 샤마니즘이었다. 경주 근처의 계림, 신라의 5악숭배, 아마 서울과 원주의 신림도 그런지 모르지, 숲에는 신이 있다고 믿고 지역별로 수호신들에게 지역공동체는 헌신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대국가는 항상 샤마니즘과 지역분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불교와 유교를 이용하였다. 신라시대 아마 5세기 경으로 기억하는데, 오악 중의 한 산인 “갈반지” (뱀이 또아리를 틀어있다는 뜻)에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지역분권적 샤마니즘을 신라가 중앙전제군주정권으로 포괄하면서 일종의 종교탄압을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차돈의 순교설화는 이차돈의 종교적 헌신 뿐 아니라. 고대 왕권의 불교 수용이 얼마나 지방분권적 귀족들의 반발을 극복하기 힘들었는지 보여준다. 아마 이차돈의 순교를 신화하하면서, 그 이야기는 고대 왕권이 법흥왕 (6세기의 불교왕명 시대를 기억하지, 법흥, 진흥, 진덕, 진성, 선덕..) 때 확립된 이후에도 계속 남아있었을 샤마니즘과 지역호족의 분권주의를 억누르는 이데올로기 였을 것이다.
신라불교의 왕권결탁은 진짜 심했다. 아바 법흥왕은 퇴위 후에 승려가 되었고 왕비는 마야부인이 (석가모니의 부인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다). 왕을 석가라고 말하기 위해 “법신”이라 말하고 신라는 불교지역인 “진토, 진짜 나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교는 민중들의 세계관의 헌신은 끌어낼 수 있지만 탈세적 경향 때문에 국가운ㅇ영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거든. 그 때문에 삼국 모두 중국의 유교와 한문을 수용하고 6,7세기경에는 역사서도 편찬하였지. 그러나 그 시대를 마치 요즘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처럼 종교대립의 시대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다. 유학자도 미신과 불교를 믿었고, 승려는 일종의 지식인이었다. 원효의 세속오계, 특히 중국 인도에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는 요즘 미국유학하고 돌아온 교수들처럼, 당신 국제정세와 국제문화를 잘 아는 지식인이고 왕의 정치를 자문하는 자문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작아서 마치 구멍가게 같을 때는 승려와 불교가 정치에 도움이 되었지만, 왜 이마트나 월 마트처럼 커지면 정치전문가가 필요하거든.
신라말기에 6두품 지식인, 불교 신자들이었지만 훨신 유교적 합리적 세계관, 도덕 질서, 정치사상을 배우니까, 왕들에게 불만이 일어나지, 7세기 이후의 신라의 사상적 갈등은 그 시대만 보면 고통스러웠겠지만 제대로 된 국가를 갖추기 위한 유교사상의 성장의 결과였다.

신라말기의 선종 9산의 등장과 고려 초기까지의 번성은 정치사의 맥락보다는 종교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교종을 유교에 비유하자면, 선종은 도교에 비교할 수 있다. 도교와 선종은 유교와 교종의 경전을 통한 지성주의보다는 깨달음과 일종의 신적인 존재와의 신비적 을 중시하였다.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성경 강조하는 장로교가 유교/교종의 경향이 강하다면, 성령을 강조하는 오순절 순복음 교회는 도교/선종과 비슷하다.
요즘 순복음교를 보고, 실은 나도 국민일보사장, 순복음교회 대빵 장로와도 몇번 만났지만 조용기 목사의 거짓말은 이건 진짜 말도 안되거든. 기윤실이 순복음교회의 장로님들과 조용기 목사의 갈등을 중재하는 일을 할 때, 조목사가 뭐라고 한 줄 알아? “장로님들, 기윤실 믿지 마세요. 우리 교회에 실은 2억헌금을 요구해 왔는데, 우리가 돈을 주지 않으니까 우리 교회를 비난하는 거예요.” 말도 안되는 소리. 내 이야기는 성령님을 말하며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성경과 경전을 공부하고 않고 깨달음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조직관리 능력이나 정치 능력이 얼마나 낮은가 하는 거야.
그러니 통일신라말의 선종이 정치하는데는 별로 도움은 못 됐지. 다만 “못살겠다 바꿔보자”는 구호로 자유당 정권을 비판한 1950년대의 우리나라 민주당처럼, 비판하고 부수는 일은 할 수 있지만, 선종은 대안적 정치질서를 만드는데는 도움이 못됐지
그러니 고려 태조왕건은 완전 골수 불교신자였지만 이름부터도 아주 유교적인 태조로 하고, 10세기의 광종의 과거제도 도입 등은 불교국가 고려의 정치는 유교로 운영된 것을 볼 있어. 실은 고려의 정치와 종교의 결탁은 너무 심해서, 왕자인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한 것은 종교사상적으로 의미있지만, 문제는 소위 “원찰”이라는 것이야. 왕실에서 자기들의 소원성취를 위해 대규모 토지를 스님들에게 하사하여 사찰을 만들고, 불교는 서양 중세 타탁한 교회처럼 대지주였다. 양산 통도사는 내 기억에 양산군의 절반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였고, “사지”라고 사찰의 토지, 요즘 지명에도 남아있는 “사하촌” 절 밑 동네는 절의 소작인이었다.
고려 후기 12-3세기는 왕실의 종교 정치결탁이 이제는 권문세족들까지 확산되는 시기였다. 우리 나라 지방자치제도 한 후, 시민단체에서 많이 고심한 것이, 부패의 확신이었다. 전에는 뇌물을 중앙정부에만 주면 되었는데, 이제는 지방에서 공장하는 사람들이 중앙정부에도 뇌물주고 지방의 군수니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돈바쳐야 되어 걱정이었다. 돈은 어차미 뇌물용으로 떼 놓았으니 차라리 옛날처럼 라인이 단수하면 편하겠는데, 이건 여기 저기 돈인사 해야 하고 잘못하다가 엉뚱한데 돈 갖다주면, 예를 들면 지방의회 의장이 더 실권이 있는데도 그것도 모르고 군수에게 돈 갖다 바치면 이건 괘씸죄로 보복받으니 돈주고 손해본다.
고려 후기는 사사시태처럼, 지방호족-귀족들이 얼마나 힘이 세어졌는지, 그들도 농장과 노비를 확대하고, 사찰도 짓고. 이 세상에서 편히 살고 극락가려는 욕심꾸러기들이었다. 스님들이야 좋지. 돈 많이 들어오니. 물론 참 불교신앙에 정진한 분들도 있었겠지만 어느 시대나 시대가 타락하면 종교가 가장 치사하게 부패한다.
승려 보우과 왕실정치에 엄청나게 간여하고 아마 공양왕인지 공민왕인지는 실은 보우가 왕비와 관계해서 낳은 아들이라는 루머 때문에 정가에서 논쟁이 많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사실인 듯 해.
이 때 비판활동을 한 사람들이 신흥 사대부들이잖아. 중국에서는 이미 선불교의 영향의 상당시 세계관으로 정리된 정주학 (혹은 신유학 성리학, 인간의 심성과 자연의 원리를 추구하는 철학성이 강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송나라에서 일어난 유교라 해서 송학이라고도 한다)이 11-12세기에 발전하면서, 고려의 안향을 통해 12세기에 이미 접촉을 하였고 13세기에는 점차 많은 지주과 그 자녀들이 공부욕심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권문세족, 왕실, 그리고 불교의 속물적인 타락에 염증이 나 있었는데, 성리학은 좋은 이론의 무기를 주었다. 마치 내가 대학 다닐 때 박정희 대통령의 군부독재정권을 비판할 때 막시름이 좋은 무기가 되었듯이 말이다.
고려 후기의 성리학은 단순히 종교사상사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투쟁, 지주계급의 경제적 이익과 자존심을 세우는 사회경제사적 의미가 있다. 그러니 고려후기의 성리학자는 항상 사 – 대부의 종교운동이라고 한다. 사는 선비이고, 대부는 관리이니, 학자이며 공무원이고,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방의 지주들이었다.  지금 남아있는 고려후기의 성리학자들의 글은 상당힌 많은 것이 불교타락상 비판이었다. 경제적 비대화뿐 아니라 윤리적 문제까지 제기하였다. 14세기의 한 사대부의 글에서는, 불교 초파일 같은 행사 때, 절이 있는 산근처를 지나가면 숲속에서 남녀가 희희닥 거리는 소리가 난다면서 비판한다.
이성계는 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관도 아니었고, 송악 그러니까 개성의 상인출신이지. 아마 군인이었던가? 정치적 야망이 상당히 큰 군인, 상인. 그가 신흥사대부들의 세력과 결탁함으로써 조선을 창건하였다. 이성계의 군사경제력, 신흥사대부들의 지식의 힘과 지방사회의 사회적 기반이 만나 조선이 만들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명문대 나온 사람이 아니니 서울대 사람을 좋아했고, 1974년의 유신헌법, 대통령에게 국회를 장악하게 하는 유정회 같은 그런 악법은 다 서울대 나온, 대개 시골출신, 서울대 법대 친구들이 했다. 군대와 학문은 이익을 위해 정치권력을 위해 어느 시대건 잘 결탁한다. 군인은 힘은 학자는 교묘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
물론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권교체는 일반 민중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성계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경자유전” 즉 밭을 가는 사람들, 일반 농민이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고 토지개혁을 한 것이었다. 사찰과 권문세족들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해서 토지는 일반농민에게 나누어 주고 노비는 해방한다는 것이 이상이었지. 몰수한 토지를 일반민중에게 경작하게 하여 아마 소출의 10%인지 20%를 내게 한다는 개혁안이었으니 민중들이야 신났겠지. 고려의 소작인들은 병작반수라고 해서 절반을 지주에게 바쳤으니, 얼마나 그래도 되었으면 좋겠나.
그러나 역사는 항상 정치가들의 구호와는 다르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권력을 잡기까지 민중의 꿈을 실현해 주겠다 약속해서 그들의 도움을 받지만, 일단 잡은 후에는 다시 민중들은 이용당하고 억압당하는 것이 역사였다. 노동자의 편에 서 있다는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도 정말 걱정된다. 마치 성인군자의 순수함을 가장하여,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 하여 번 돈으로 그를 후원하였지만 나는 싹수가 노란 것을 이미 알았다. 그가 선거 운동 할 동안에 읽은 신문기사에는 핵심 12명 참모중 하나에 양심을 파는 기독교인이 끼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서울대 총기독학생회, Ncc계통의 기독학생회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나의한 해 선배이다. 졸업 후에는 지방 YMCA 총무도 하며, 나와는 공명선거실천운동도 함께 한 사람이다.
그런데 2000년 총선때, 서울 강남구 후보인 함승희 의원이 두번째 부인을 통해 낳은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라는 제보를 우리 공선협 사무실로 해 왔다. 그때 나는 공선협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었고 그실무의 상당부분을 맡았고, 손봉호 교수님과 서경석 목사 등 우리들은 한참 토론후에 함승희 문제의 가정생활문제를 기자회견을 통해 알리기로 했다. “사생활”이지만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 이상 공인이고 그의 가정생활은 이미 공생활이요, 공선협은 우리가 알게 된 정보를 유권자들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참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바쁜데, 선배가 전화가 왔다. 그는 시민운동하다고 정치욕심이 있어서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비서실 중간간부직을 맡고 있었다. 대뜸 한다는 말이, “야, 너 시민단체가 무슨 권한이 있다고 남의 사생활에 간여하냐?” 나쁜놈, 한때 배고프게 시민운동 해 놓고 이제 청와대 들어가 권력에 손잡은 후에는 시민단체의 권한 문제를 말하다니. 청와대 상관이 시민단체에 전화걸어 무마해 달라고 부탁했다면 차라리 옷 벗고 청와대 나와 버리지. 나는 얼마나 와가 났든지, “앞으로 나한데 전화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작자가 핵심참모로 들어가 있으니 앞으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장관쯤 한자리 하겠지. 그래서 나는 정치도 별로 안믿지만 노무현 대통령 정부는 그냥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차라리 어쩌면 박정희, 노태우, 전두환 등 군부 독재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보다는 최소한 윤리, 문화적으로 나을지도 모르겠다. 정치가 가진 한계, 원래 타협해야 하고, 비밀스런 정치자금과 권력암투가 있느데도, 자기는 깨끗한 듯이 말하는 사람은 위선자가 되기 싶상이다. 정치는 정책과 현실이지 단순히 순수한 (실제 순수한지도 모르겠고) 동기와 더구나 참신한 이미지에 의존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결국은 비도덕적일 수 있다. 그래도 우리 대통령 잘 하도록 기도한다. 하나님이 허락한 지도자이고, 그가 바보스럽고 위선적이된다면 그것은 우리 국민이 그런 지도자를 모시기를 선택한 것이고, 또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시행착오, 더구나 항상 있던 그 부정부패가 드러날 것이 예상됨에도 기도한다.
곁길로 많이 샜다만, 이성계도 농민을 위하는 것 같지만, 불교신자로서 큰 절짓고 돈대 주고, 이 새상에서 임금되고 저 세상에서도 임금의 돈으로 공양한 돈으로 큰자리 살려 하였다. 아주 재능있는 셋째 아들 방원이 형들을 죽이고 제3대 태종이 된 것은 우리 정치의 함계, 나아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정치의 한계를 보여준다.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 그만 쓰여 하겠다. 요약하면, 너 시험공부하며 이런 생각들로 성경말씀의 조명을 받으며 시대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고조선의 단군신화와 팔조금법은 신앙인으로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자연과 사회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의 법을 계시하였으며 우리 조상들은 그 계시에 반응하여, 잘 반응하기도 하고 왜곡하면서 단군신앙도 가지고 팔조금법을 제정하여 운영했다.
삼국 고대국가는 토속적 지방분권적 샤마니즘을 불교신앙으로 통합하여 중앙왕권 중심의 국가를 만들었다. 불교는 왕실에서 일반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위에서 밑으로 전해졌다. 물론 불교는 점차 일반 민중들 자신이 좋아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고대왕국의 정치는 유교를 통해 사상적 도움을 받았다.
통일신라말기에 육두품 유교지식인의 등장은 합리적 정치질서를 향한 한국사의 한 발전의 과정이었고, 선종을 통한 기존질서의 부정에 의해 가능했다.
고려와 태조왕건은 유교적 정치질서를 실천하였지만 기본적으로 불교신자이면서 종교정치 결탁으로 많은 문제를 낳았다.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과 사찰의 대 지주화로 인해 민중들이 힘들었다. 마침 성리학이 12세기부터 들어와 지방 지주들은 성리학을 공부하며 그 자녀들이 신흥사대부로 등장하면서, 군인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은 더 유교와 중국을 배우면서 합리적인 정치를 하였지만 불교는 여전히 민중의 종교요, 샤마니즘도 그랬다. 국가 중요행사는 불교를 배제한것도 아니고 샤마니즘적 미신적 요소를 간직하였다.
태조가 약속한 토지개혁 농민들에게 토지를 주고 노비를 해방한다고 했지만 조선 후기 농민들의 소작은 50% 이상을 지주들에게 바쳐야 했고, 17세기에는 국민의 절반이상이 노비로 되었다. 해방 후 북한에서 먼저 토지개혁을 하였고 남한에도 토지개혁은 했지만 역시 농민은 가난하고 남북에서 일반 국민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
조선은 신흥사대부들의 나라였고, 북한은 김정일과 공산당 간부의 나라고, 남한도 글쎄, 권력잡은 사람들과 기업의 이익을 위한 나라같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하나님은 계시면서 당신과 당신의 법을 계시하셨고, 교회를 통해 그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역사의 눈물과 고통의 현장을 찾아오신 하나님 그분, 우리는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령님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 조상은 환인, 환웅, 단군을 믿었지만 우리는 참 하나님을 안다.
이나야. 그 교회의 복에 유대수 장로와 이기순 집사를 통해 우리도 들어왔고, 너도 유해무 목사와 옥현순씨를 통해 들어와 있다.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타협하지 마라. 잠와도 열심히 생각하고 외우고 공부해라.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네 아빠 나의 형님은 칼빈주의 문화관과 문화적 사명에 대해 편지를 썼고, 나는 힘들 때 마다 그 편지를 쥐고 읽으며 다짐했다. 겨울에 잠이 오면 세수대야에 찬물을 떠가다 발을 담그며 졸음을 참으며 하루 5시간씩 잠자며 공부기계처럼 공부했다. 그러나 유대수 장로의 전통을 따라 토요일 자정이면 공부를 끝내고 월요일 3시경에는 일어나 공부를 시작했다.
이나야 자랑스런 우리 가문의 전통을 계속 이어가 다오. 유대수 장로의 합천 묘산의 전통을 이어가 다오. 고난에도 손해보며 우직하게 살아간 그 믿음 때문에 오늘도 네 아빠는 힘들어하고 우리도 힘들게 산다. 그러나 네가 이어갈 전통은 그리스도와 바울과 어거스틴과, 중세의 안셈과, 아퀴나스와 루터와 칼빈, 웨슬리, 한국초대교회의 길선주, 일제시대의 한상동, 주기철, 거창고등학교의 전영창 교장, 그리고 관기교회의 할머니 성도들이 이어가는 보편교회의 전통이다. 이 교회의 딸로서 유대수 장로와 하나님아버지의 가문의 딸로서 잘 참고 공부해라. 뭐 대학못가도 하나님이 모욕받는 것은 아니니 너무 부담갖지는 말아라.
그래도 어쨌든 지금은 다른 생각말고, 그냥 네가 원하는 이대 영문과에 합격하면 좋겠다.
바삐 쓰느라 교정도 못봤으니 교정보며 새겨 읽어라.

2003년 10월 22일

미국서
작은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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